고등학교에서 ‘지식재산일반’ 교과로 배우는 진로 교육

서향희(명신여자고등학교)

요약
지식재산을 강조하고 있는 선진국 미국에서도 초, 중, 고 공교육에서 지식재산 교과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2015 개정교육과정을 통해 진로선택 교과를 처음 편성했다. 2018년도부터는 진로선택 교과의 하나로 지식재산일반 교과를 신설해 학교 현장에 도입했다. 고등학교에서 처음 배우는 지식재산일반 교과가 무엇을 배우는 교과인지 알아보고 학교현장의 사례를 통해 진로교육적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들어가며
우리가 현재 가르치고 있는 내용은 미래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지식과 정보인가? 현재의 지식은 몇 년이나 유용하게 쓰일까? 물론 교육을 미래의 효용가치로만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사라져가는 직업과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07년 홍콩에서 열린 ‘CLSA포럼’ 인터뷰에서 한국의 교육방식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교육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 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평등화하고 획일화된 교육을 개혁해 나갈 것을 요구했다.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890423#home )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선진국이 된 한국교육에서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이에 지식재산일반 교과가 학생들의 미래 직업 선택을 위한 탐색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1. 처음으로 신설된 지식재산일반 교과
2015 개정교육과정은 4차 산업혁명에 접어든 시대와 맞물려 ‘창의 융합형 인재 양성’을 교육 목표로 제시했다. 또한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교과를 선택, 이수하도록 하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됐다. 지식재산일반 교과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된 교과이다. 지식재산 교육을 강조하는 선진국인 미국 초, 중, 고 공교육의 정규교육과정에서도 지식재산 교과는 찾아볼 수 없다니 얼마나 획기적인가. 그러니 한국 고등학교에서 지식재산일반 교과를 처음으로 접한 교사들의 신기해했던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지식재산일반 교과를 간단히 소개하면, 지식재산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발명을 통하여 지식재산을 권리화하고 이를 보호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과이다. 요약하면, 지식재산에 대한 이해와 발명, 특허, 창업에 관한 기본적인 역량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다.
그림. 2015 개정 고등학교 교육과정 편제
2015 개정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교과는 보통교과와 전문교과로 나누어지고, 보통교과는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으로, 선택과목은 다시 일반 선택과 진로선택 과목으로 분류된다. 진로선택 과목은 교과융합, 진로 안내, 교과별 심화, 실생활 체험학습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표. 고등학교 보통 교과 교과목 구성
*고등학교 보통교과는 기초, 탐구, 체육·예술, 생활·교양 영역이 있으며 기초 영역에 국어와 수학, 영어, 그리고 한국사가 있다. 탐구 영역에는 사회와 과학이, 체육·예술 영역에는 체육과 예술이 있다. 생활·교양 영역에는 기술·가정과 제2외국어와 한문, 그리고 교양 교과 등이 있다.
*특히 기술가정 교과군을 살펴 보면, 일반선택과목으로 기술가정과 정보 교과가 있으며 진로선택과목으로 공학일반과 지식재산일반과 인공지능 기초 등의 교과가 있다.
2. 명신여고 진로선택 과목으로 채택한 지식재산일반 교과
2015 개정교육과정을 통해 지식재산일반 교과가 신설된 첫해는 2018년도이다. 인천에 위치한 명신여고는 지식재산일반 교과를 가장 먼저 채택한 전국에 몇 안 되는 학교 중의 하나다. 교사 입장에서 볼 때, 일반계 여고에서 수십 년간 가르쳐온 기술·가정을 내려놓고 지식재산일반 교과를 새롭게 맡아 가르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명한 경제학자 슘페터가 강조한 ‘창조적 파괴’의 의미처럼,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때 혁신이 생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명신여고에서 지식재산일반 교과를 가르친 지 5년째, 최근 들어 우리 명신여고는 지식재산과 발명교육을 선도하는 학교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의 지속적인 지원과 인천교육청의 교육적 뒷받침, 그리고 학교 관리자의 결단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까지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싶다.
우리 학교는 입학 전 신입생들에게 아래의 7개 트랙을 제시하는 것으로 진로 교육이 시작된다. 설문을 통해 7개 트랙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것을 기준으로 학급을 편성한다. 고등학교 1학년은 공통교육과정이므로, 학생의 희망 진로에 따른 반편성을 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선택과 집중을 위한 선행작업이다. 충분히 자신의 진로를 생각해보고 진로가 비슷한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어 진로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이 시기는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고민의 시간이며 준비의 기간이다.
교사인 입장에서는 지식재산일반 교과를 학생들의 진로에 맞게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관건이다. 같은 내용의 수업을 하지만 학생 개개인의 희망 진로에 따라 피드백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장래희망이 기업가(CEO)인 학생이 경영, 경제학을 전공하기 위해 사회과학의 교육을 받는 학급에 있다고 가정하자. 이 학생은 다른 학생들과 달리 발명과 특허교육을 기업가 입장에서 바라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교사의 피드백 또한 학생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림. 꿈 설계 맞춤형 진로선택 교육 및 분야
  • 미디어융합사회: 광고, 홍보, 언론, 방송매체
  • 인문과학 : 문학, 어학, 철학, 인문학 등
  • 사회과학 : 경영, 경제, 회계, 법, 행정 등
  • 문화예술 : 음악, 미술, 연극, 공연, 스포츠
  • 나노&바이오 : 전자, 로봇, 의료, 생명공학 등
  • 자연이공 : 수학, 물리, 천문, 이공계열 등
  • 임베디드 AI : 기계, IT, 인공지능, 정보통신 등
명신여고에서는 7개의 트랙이 존재하기 때문에 학급별 학생들의 성향도 조금은 차이가 난다. 임베디드AI, 자연이공, 나노&바이오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과학의 원리나 기술적 요소가 가미된 발명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경우가 많다. 문화예술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예술적 감각이 있어서 디자인권 수업에 좀 더 관심을 보이며 도면 작성을 잘하는 편이다. 또한 인문과학, 사회과학, 미디어 융합 사회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수업내용 중 저작권 부분에 질문이 많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상세하게 글로 잘 표현해 특허 명세서를 쓸 때 강점을 보이곤 한다.
그림. 나노&바이오, 임베디드AI 과정의 학생들이 발명품을 제작하는 모습
발명과 특허가 그동안 과학교과 중심으로 이루어져 이과 학생들의 전유물과 같이 인식되었다. 그러다 보니 과학을 잘하는 학생들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오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신여고는 그 틀을 깨고 지식재산일반 교과를 통해 모든 학생들이 발명에 참여하고 특허를 배운다.
3. 지식재산일반 교과로 배우는 발명·특허·창업교육의 실제
지식재산일반 교과의 첫 시간, 학생들에게 발명노트를 한 권씩 나누어준다. 학생들의 영감을 메모할 수 있는 노트이다. 이 노트에 만화 캐릭터를 그리는 학생도 있고 때로는 수학문제, 영어단어가 보일 때도 있다. 이때 교사로서 상처받지 말고 아이디어를 메모한 부분을 하나라도 찾아내어 관심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그다음 학생의 의도를 묻고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학생들은 연구원이 아니다. 어떻게 발명만 하겠는가? 단지 가끔 생각나는 소중한 생각이나 아이디어, 디자인 등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도록 습관화하는 태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발명의 시작이다.
발명노트에 본인이 문제라고 적은 아이디어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why?라는 연속적인 질문을 하며 그 해답을 찾는다. why-why 다이어그램 기법 적용의 예다.
또한 사회 문제 해결을 발명 주제로 제시하기도 한다. 발명은 팀별로 운영할 때 효과적이다. 개인을 넘어 팀으로 협력하면 아이디어는 순식간에 증폭되어 많은 양의 아이디어가 모아진다.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데 멈추지 않고 그 중에 최선의 아이디어를 선정하기도 한다. 일명 PMI기법으로 Plus, Minus, Interesting한 면을 정리하며 M의 요소를 보완하고 P와 I는 극대화한다.
그림. 문제 해결하기 (why-why 다이어그램)(좌), 최선의 아이디어 선정하기 (PMI 기법)(우)
이처럼 발명교육에 사용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매 수업시간 다양한 방법들을 적용하여 발명문제를 분석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게 된다. 이러한 활동들이 지식재산일반 교과에서 이루어진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첫 시간부터 발명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초, 중학교 때 했던 발명대회, 포스터 등을 그리며 힘들어했던 경험들을 떠올리며 ‘지식재산일반’ 이라는 새로운 교과에 대한 신선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인간의 지식이 재산화될 수 있고 미래의 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 학생들은 신기해한다.
또한 기업의 사례를 들어 지식재산 및 발명교육이 왜 필요한 지를 깨닫게 한다. 코로나의 위기에서 돋보였던 ‘배달의 민족’은 식당 하나 없이 앱으로 사업에 있어 대박이 났다. 비디오 가게에서 출발해 비디오테입을 배달해주던 ‘넷플릭스’ 역시 앱 하나로 세계적으로 성공의 신화를 썼다. 실제 생활과 밀접한 이야기가 펼쳐지면 대다수 학생들의 눈은 반짝거린다.
이제는 가상세계가 뜨고 있다. 디지털 지구라는 개념을 만들어 플랫폼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화폐를 만들고 부동산을 팔기도 한다.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라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고유한 디지털 수집품을 만들어내 사고파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시장이 시작되고 확대되고 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배우고 준비해야 하는가?
  • 언제까지 앱만 들여다보며 사용자로 만족할 것인가?
  • 내가 현재 무엇이 필요한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남들이 아직 만들어내지 않은 것, 이미 만들어진 것도 다시 개선할 수 있다.
이제 스마폰의 앱은 더 이상 단순한 발명품이 아닌 창업 및 사업의 출발점이다. 특허를 위한 발명은 물품에 한정되지 않고 소프트웨어, 방법, 물질 등 필요한 것을 생각해보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림. 사업계획서 작성으로 직접 앱을 제작하여 발표(생명을 살리는 SAVE TOGETHER, 병원예약을 도와주는 헬스 케어 도우미 앱)
사업계획서 작성으로 직접 앱을 제작하여 발표(생명을 살리는 SAVE TOGETHER, 병원예약을 도와주는 헬스 케어 도우미 앱)
우리 학교도 2018년도부터 지식재산일반 교과시간을 활용해 매년 관련 내용들을 교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만 봐도, 1학년 학생들의 특허 출원이 44건에 달했다.
그림. 특허 명세서 내용 및 도면 작성하기
초, 중, 고등학생들의 특허권, 실용신안권, 디자인권은 매년 각 10건씩 무료로 출원할 수 있다. 대한변리사회는 공익변리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학생들이 무료변리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기회를 활용해, 학생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지식재산을 권리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안내했으면 한다.
지식재산일반 교과로 발명의 기초부터 완성, 창업까지 가르치고 아이들의 실천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과거 발명교육의 경험이 전무한 문과 출신의 교사인 저 개인도 현재 지식재산일반교과를 가르치며 있으니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기를 추천한다.
마치며
지식재산일반 교과를 가르치다 보면 본인의 진로를 정하지 못하다가 이 교과를 수강하고 나서 흥미를 느껴 변리사가 되겠다고 말하는 학생을 만나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 자신의 진로가 건축가였는데 수업시간에 3D도면 프로그램과 메타버스 플랫폼을 배우고 나서 가상 디지털 건축 설계 전문가가 되고 싶다며 자신의 구체적인 포부를 밝히는 학생도 있었다. 이처럼 자신의 진로를 구체화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고 전하는 학생들이 많이 나왔기에 가르치는 교사로서 지식재산일반 교과의 효과성을 체감한다.
물론 이 교과를 배우는 학생들 모두를 발명가나 기업가, 변리사가 되도록 돕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과의 취지와 성격에 맞게 학생들의 진로선택에 도움이 된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될 것이다. 발명으로 자신의 특허도 내고, 진로까지 정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처럼 많은 학생들이 지식재산일반 교과 교육을 받고 발명과 특허, 창업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고, 미래의 진로와 결부시켜 공부하고 준비하는 아이들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그림. 제페토 메타버스 학교 구축 (가운데 학생의 진로가 가상 디지털 건축설계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