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세플러스』
뇌와 인공지능의 창의성
박제윤(신경철학연구소 소장)
jeyounp@hanmail.net
요약
많은 선구적 과학자들이 창의적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해 왜 철학적으로 사고하는가, 왜 비판적 질문이 중요한가? 비판적 질문은 어떻게 신경계에 변화를 일으키고,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가? 그리고 창의적 사고를 위해 통섭 연구는 왜 필요한가? 이런 여러 질문에 최근 인공 신경망과 신경계에 대한 연구에 기초해서 가설적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한국에서도 창의적 과학 공부를 위해 교사와 학생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사고하고 비판적으로 질문하기를 배워야 한다.
들어가며
창의성의 의미 혹은 사전적 정의는 “유용한 새로운 생각”이다. 이것을 갑자기 물어 대답하지 못하는 이라도 그 의미를 모르는 이는 드물다. 그렇지만 창의성 교육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조차 창의성 자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드러낸다. 그들이 알려주는 창의적 방법이란 흔히 “새로운 방향으로 혹은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라”는 이야기이다. 사실 새로운 방향으로 혹은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한 것이 창의적 생각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가르치는 교육 전문가는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며,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지는 못한다. 문제는 어떻게 새로운 혹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가에 있다.
1) 창의성에 대한 신경학적 연구
다중지능을 발표한 것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하버드 교육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1943-)는 저서 Creating Minds(1993)(역서, 『열정과 기질』)에서 여러 분야의 창의적 능력을 발휘한 사람들의 삶과 성과를 살펴보았다. 특히 그는 창의적 능력을 발휘한 과학자들이 그들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즉 궁극적 질문을 던질 줄 알았던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질문이 그들로 하여금 어떻게 창의적 생각을 발전시켰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창조적인 인물의 …… 신경 체계의 구조나 기능에 남다른 특징이 있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과학의 창조성 연구라면 결국 이러한 생물학적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곧 이 방면의 연구가 수행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86쪽)
그가 기대하였던 대로 이후 많은 학자들은 뇌과학을 연구하여 우리의 지식 자체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노력하였다. 특히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부부 철학자인 폴 처칠랜드와 패트리샤 처칠랜드(Paul & Patricia Churchland)는 뇌과학 연구에 기반하여 전통철학의 의문에 대답을 시도하는 신경철학(Neurophilosphy)를 개척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전망한다.
“우리는, 지식이 무엇인지, 지식을 어떻게 습득하는지, 그리고 지식이 시간에 걸쳐 어떻게 성장하는지 등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다. ” 『플라톤의 카메라』(Plato’s Camera, 2012)
그들의 연구 결과에 비추어 창의성이 뇌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이야기해보려면, 그들의 이야기를 잠시 미루고, 인공지능의 역사와 최근 뇌 연구를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연구와 뇌 연구는 밀접한 관계에서 발전해왔고, 지금도 긴밀한 상관관계에서 발전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공지능은 컴퓨터로 구현되는 지능이다. 따라서 간략한 컴퓨터의 발달사와 인공지능의 발달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2) 인공지능의 간단한 역사
인공지능 연구는 크게 두 분야로 나뉘어 지금까지 발전되어오고 있다. 그 하나는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이다. 전자의 인공지능은 1980년대에 적극 응용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인간 전문가의 의사결정 능력을 컴퓨터가 모방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에 후자의 것은 생물 신경계에 대한 연구 성과에 따라서 함께 발전하였는데, 1990년대에서야 응용되기 시작했고, 2010년대에 들어와서 활발히 발전하는 중이다. 한국에서 있었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은 유명한데, 알파고에는 위의 두 기술이 모두 활용되었다.
인공지능은 인간 지능을 모방하는 컴퓨터 시스템이다. 지금의 컴퓨터 개념을 창의적으로 제안했던 사람은 영국의 앨런 튜링(Alan M. Turing, 1912-1954) 이다. 튜링은 인간 언어의 논리적 사고의 흐름을 수학적 계산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 논문, “계산가능한 수에 관하여(On computable numbers, with and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 1936, Mind)”를 발표하였다. 그는 “튜링머신”이란 계산기 개념을 제안한 후, 컴퓨터가 지성적 기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후속 논문 “계산기와 지성(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1950, Mind)에서 제안하였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두 논문 모두 철학전문 학술지 Mind에 제출하였다는 점이다. 앞의 논문에서 그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동의한다는 수리철학의 문제를 다룬다. 후자의 논문에서 그는 계산기계가 인간을 속일 정도의 의사결정을 보여주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튜링 테스트” 개념을 제안하였다. 어느 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후, 다음에 나올 여러 의사결정 중 하나를 컴퓨터가 결정하도록 프로그램하면 그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이러한 방법은 전문가 지식 기반 프로그램의 논리추론에 적용될 수 있었다. 이러한 방법은 다양한 컴퓨터게임 프로그램에 적용되어 지금도 활용된다.
이러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바둑 컴퓨터게임 프로그램에 적용할 경우, 인간 바둑 프로게이머의 지식을 적용해야 한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서 이세돌은 이런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내가 결코) “단 한 번도 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세계 어느 바둑기사와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며, 어느 누구의 전문 바둑기사의 능력을 모방하는 컴퓨터와 지지 않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추정컨대, 그는 다른 개념의 인공지능이 있었음을 몰랐던 것 같다.) 이렇게 의사결정 하는 인공지능은 아주 결정적 단점을 가지는데, 그것은 비슷한 모습의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간이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분별을 언어 논리추론에 의존하는 의사결정 시스템은 매우 하기 어렵다.
그런데 신경계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계산하는 새로운 계산기 개념이 등장하였다. 그 개념은 튜링의 아이디어에 따라서 처음 컴퓨터를 개발했던 존 폰노이만(John von Neumann, 1903-1957)에 의해 제안되었다. 폰노이만은 2차 세계대전 중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기획, 일명 “맨해튼 프로젝트”에 가담했으며, 아인슈타인·괴델 등과 함께 프린스턴 연구소에 근무했다. 또한 그는 초기 컴퓨터 모델, 조니악(JONIAC) 개발에 참여했고, 범용컴퓨터 모델을 고안하였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폰노이만 모델에 기반한다. 그는 1955년 실라이먼 강연(Silliman Lectures)에 초청받았고, 그 강연을 위해 원고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그는 1957년 사망하면서 그 강연 원고는 사후 저서, The Computer and the Brain (1986, 2000)으로 출판되었다.
책 제목이 그러하듯이, 그는 자신이 개발했던 컴퓨터와 뇌 사이의 소자, 구조, 기능 등을 비교한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컴퓨터가 뇌를 모방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뇌의 신경계는 낮은 수준의 정밀도를 갖지만, 높은 수준의 계산 신뢰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신경계가 병렬 연결로 계산되기 때문인데, 일부 연결의 상실이 있더라도 정보의 상실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병렬 연결의 신경계 정보처리 시스템은 통계적이다. 나아가서 그는 자신이 튜링의 아이디어에 따라 개발한 범용컴퓨터는 우리 뇌의 계산 구조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지적한다.
인간 언어는 … 절대 논리적 필연성이 없다. … 정말로 중추신경계의 본성과 그 메시지 시스템의 본성이 … 그러하다. … 결론적으로, 논리학과 수학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다른 논리적 구조가 있다. … 그래서 중추신경계의 논리학과 수학은 구조적으로 … 우리가 일상 경험에서 말하는 언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pp. 81-82)
이러한 폰노이만의 아이디어는 훗날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신경망 컴퓨터 개념으로 발전되고 개선되어, 마침내 오늘날 딥러닝(deep learning)이라 불리는 인공 신경망으로 발전되고 활용되는 중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한국의 연구자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튜링과 폰노이만 모두 자신의 연구를 넘어서는 통섭 연구를 하였고, 자신들의 문제를 철학적(비판적)으로 사유하여 새로운 컴퓨터 개념을 창안하였다는 점이다. 이제 신경계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뇌가 어떻게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는지 이해하려면, 그 기초 구조를 철학적으로 이해하는 일부터 필요하다.
3) 신경망의 범주화
신경세포인 뉴런(neurons)은 일반적으로 수상돌기(dendrites)를 통해 입력 신호를 받아들여, 축삭(axons)을 통해 출력 신호를 내보낸다. 만약 이전 뉴런으로부터 오는 입력 신호와 시냅스의 강도(weights)에 의해 변조된 총합이 임계값(threshold)을 넘어설 경우에만, 출력신호는 다음 뉴런으로 전달된다. 그렇다면 폰노이만이 주목하였던 신경계의 병렬 연결 구조는 무엇인지, 처칠랜드 부부(The Churchlands)의 연구에 기초하여 이야기해보자.
[표 1] 신경망 병렬구조 (출처: Paul Churchland, 1989)
대뇌피질의 신경망은 <표1>의 (a)와 같이 병렬 연결 및 처리 구조를 가진다. (b)는 그런 신경망의 연결 구조의 도식적 그림이다. 이러한 연결 구조에서 신경망의 계산처리는 입력신호(a, b, c, d)가 시냅스(pn, qn, rn)에 의해 변조된 후 출력신호(x, y, z)를 내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신경망은 일종의 행렬변환을 계산처리 하는, 또는 벡터를 변환시켜주는 계산기라고 할 수 있다. 학습된 정보는 시냅스의 강도(weights)로 저장되며, 일단 학습이 이루어지면 그 저장된 기억을 통해 입력정보가 처리된다. 이것은 우리의 인지 능력이 배경 지식에 의존한다는, 다시 말해서 “관찰이 이론에 의존한다”는 현대 프래그머티즘(pragmatism) 철학의 인식론(epistemology)의 관점을 긍정해준다.
이와 같은 신경망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여, 얼굴 인지기능을 학습하는 인공지능 연구가 있었다. 연구원들이 자신들의 얼굴 흑백사진을 인공신경망이 학습하도록 한 후 다른 자신의 얼굴 사진을 제시했을 때, 그 인공신경망은 그 얼굴이 누구인지 100% 정확히 맞추었다.
[표 2] Cottrell’s FaceNet의 구조(Cottrell Gray 1991) (출처: Paul Churchland, 1989)
코트렐 얼굴망 인공지능은 <표2>와 같이 입력신호로 가로 및 세로 64개의 흑백의 정도만을 받아들이고, 그 신호는 80개의 은닉유닛층으로 보내져 학습한 후, 출력신호는 8개의 유닛으로 내보낸다. 학습이 이루어지는 곳은 역시 은닉유닛층의 80개 가상의 뉴런이다. 이런 80개 유닛이 어떻게 분별 능력인 범주(categories)를 가질 수 있는지를 도식적으로 이해해보자.
[표 3] Parameter-space (출처: Paul Churchland, 1989)
80개 유닛에 의한 80차원의 위상공간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우므로, 원리적 이해를 위해 3개 유닛의 3차원로 줄여서 설명하자면, <표3> (a)와 같이 위상공간의 지표(parameter)로 입, 코, 눈의 특징을 분별한다고 이해해볼 수 있다. 특정 입력 신호에 대해 가상의 뉴런인 유닛이 만약 Mary의 숫자 조합에 가깝게 활성 된다면 그것을 매리라고 혹은 매리에 가깝다고 분별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신경계 신경망이 특정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학습된다면, 그 신경망은 무엇을 분별할 능력으로 범주를 학습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우리의 인지에 활용되는 유닛 혹은 뉴런은 80개가 아니며, 망막에만 약 80만개 이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80개 뉴런을 가정하는 이 실험은 실제에 훨씬 못 미친다. (그렇지만 신경망의 기능을 원리적으로 이해하기에 도움이 되며, 이런 인공신경망이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 인간보다 특별한 능력을 갖도록 만드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만약 인공신경망이 인간의 광감각 세포를 넘어, 다양한 전자파, 즉 적외선이나 자외선에도 반응하는 센서의 신호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도록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신경망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플라톤이 던졌던 인식론적 물음을 고려해보자. 고대 철학자 플라톤(Plato)은 피타고라스 기하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우리가 기하학 지식을 어떻게 갖는지 설명하고 싶었다. 당시 그는 대략적 도형을 그리면서 학생과 자신이 기하학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것은 그런 도형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으로 우리가 완전한 기하학 도형, 예를 들어 완전한 원, 완전한 정삼각형 등을 이미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추상적 개념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는 영혼이 태어나기 전 이데아의 세계에서 그런 지식을 보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했다. 오늘날 인공지능이 무엇을 그것으로 알아보려면, 그것에 관한 추상적 개념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추상적 개념, 아니 개념(concepts) 자체가 무엇인가? 플라톤의 질문을 우리는 오늘날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공지능이 무엇을 인지하기 위해 개념체계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표 4] (a) 주관적 윤곽선 (출처: Paul Churchland, 1989),
(b) 부족한 입력 신호에도 반응하는 신경망의 인지적 기능 (출처: 박제윤 2021)
<표4> (a) 그림에서 우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삼각형을 뚜렷이 볼 수 있다. 입력 신호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신호의 정보를 읽어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은 다만 환영일 뿐인가? 그런 환영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b) 그림의 신경망 연결에서 볼 수 있듯이 은닉유닛층이 일단 학습을 마치면, 부족한 입력 신호에도 은닉층은 정상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은닉유닛층의 학습된 활성 패턴은 추상적 개념을 담아내며, 그것으로 무엇을 분별할 범주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다. 뇌의 시각 신경 경로와 청각 신경 경로는 사실상 딥러닝 구조를 가진다. 나아가서 실제로 뇌는 이러한 병렬 연결의 무수한 은닉유닛층으로 채워져있다.
이 시점에서 전통 철학의 중요한 다른 의문이 물어질 수 있다. 우리는 관찰을 통해서 가설 혹은 이론을 제안한다고 가정하는데, 그러한 일이 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계란에서 코끼리가 왜 나올 수 없으며, 병아리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따르면, 모든 생물과 사물에 본질이 있으며, 본질은 “모든 계란이 병아리가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이다. 다시 말해서, 본질은 일반화(generalization)를 말해준다. 그리고 일반화로 말하는 전칭긍정명제는 우리가 법칙을 말할 때 쓰는 문장형식이다. 그러므로 본질을 알면 자연의 법칙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관찰 중에 그것에 대한 일반화를 유도할 수 있으며, 그것이 “귀납추론(Inductive inference)”이다. 그리고 일반화로부터 발견되지 않은 것을 예측하거나, 이미 발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데, 이것이 “연역추론(Deductive inference)”이다. 자연을 연구하는 연구자는 관찰을 통해 법칙, 즉 일반화를 발견하려 한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가? 전통적인 철학의 문제를 이제 뇌과학의 관점에서 말할 수 있는가?
[표 5] (a) 가상의 게(crab) 신경망의 운동조절 모델 (출처: Paul Churchland, 1989)
<표5> (a)는 시각 신호를 팔 동작으로 간단히 변환시켜주는 가상의 게(crab)의 이중 신경망 모델이다. 그런데 그런 신경망으로는 (b)와 같이 날아가는 파리를 잡을 수 없다. 파리의 위치로 팔을 뻗으면 언제나 파리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위해 신경망 하나를 더 추가한 모델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셋째 신경망은 파리의 모든 시간 경과의 위치를 보정해주는 일반화를 담을 수 있다. 뇌는 이렇게 감각에 따른 운동조절 신경망인 국소 기능 대응도(topographic maps)를 무수히 가진다. 이런 모델에 따르면, 일반화 혹은 가설이란 학습된 신경망의 활성 패턴이다. 이런 신경망이 고도로 집적화 되고, 더욱 추상화 되는 계층적 구조를 이룬다면, 그것이 과학 연구자들이 찾는 과학 이론의 기능을 담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우리가 세계로부터 습득하는 추상적 개념과 일반화란 신경망의 활성 패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병렬 연결의 신경망은 우리가 세계를 관찰 및 이해하고, 세계를 설명 및 예측하는 이론체계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계를 창의적으로 이해하려면, 그러한 신경망을 새롭게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4) 비판적 질문을 통한 창의적 개념체계
병렬연결의 인공 신경망의 학습은 은닉유닛층의 강도를 알고리즘에 따라 수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어느 한 유닛의 강도를 수정하면, 다른 유닛의 강도를 조절하여 전체 신경망의 활성 패턴의 출력이 바람직한 응답을 출력할 수 있어야 한다.
[표 6] 신경망의 학습과정을 보여주는 도식적 그림 (출처: 박제윤 2021)
그렇게 유닛들 각각을 수정하는 일을 컴퓨터가 수행하려면, 많은 반복된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인공 신경망의 학습으로 얻은 결과인 신경망의 활성 패턴이 최종의 좋은 답인지 확인하는 일은 정답이란 말할 비교 대상이 없으므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표6>의 a와 같은 국소 최소값(local minima)에 머물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더 좋은 해답이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은 오직 다시 학습시켜서 그 결과가 b와 같은 전체 최소값(global minima)에 이르는지를 확인해보는 방법뿐이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프로그래머는 학습된 신경망에 오류값을 주고 재학습하도록 요동(fluctuation)을 준다. 신경계는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하는 복잡계이다. 오류값이 주어진 은닉유닛층은 스스로 재학습을 통해 더 좋은 해답을 찾을 가능성에 도전하게 된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인공 신경망의 학습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 인간의 실제 신경계는 어떻게 이미 학습된 신경망 활성패턴을 스스로 재학습하도록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오래 전부터 철학자들이 사용했던 의심하기, 회의하기, 반성하기, 한 마디로 비판적 질문하기 이다. 내가 주장하는 비판적 질문하기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지금까지 확신하던 개념체계 전체에 어떤 논리적 오류가 있을지, 혹은 개념 체계 전체의 논리적 일관성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의식적으로 검토하기 이다. 그리고 자신의 전제로부터 자신의 결론을 추론하는 논리에 문제가 없는지 반성적으로 살펴보는 일이다. 둘째는 자신의 개념체계에서 너무도 확신하는 기초 개념체계 자체 혹은 가정을 의심하고 묻는 “궁극적 질문하기” 이다. 이러한 의심하기를 통해 뇌의 신경망은 재학습이 유도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조직화하는 신경망은 새로운 활성패턴을 스스로 찾는다.
마치며
플라톤이 기하학을 연구하면서 궁극적 질문을 던졌고, 실제 눈으로 보는 도형이 아니라 이성이 이해하는 개념이 있음을 알아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적 본성이 무엇인지 물었고, 자신의 학문 방법론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뉴턴은 데카르트 철학을 공부하고 자신의 물리학을 어떤 체계로 구성해야 하는지를 의식하고 『자연철학의 수학적 구조』라는 역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으며, 자신이 연구를 어떤 방법으로 연구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빛의 운동에 관한 『광학』을 저술했다. 뉴턴을 공부한 칸트는 그런 훌륭한 지식, 즉 이성적으로 사고하여 진리인 새로운 지식을 확장하는 “선험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해명하는 『순수이성비판』을 저술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 역학의 가장 궁극적 개념인 시간과 공간에 대해 의심하기를 하여 결국 상대성이론을 발표할 수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인생 전체에 걸친 양자역학 연구과정에서 어떤 철학적 사유를 했는지를 저서 『부분과 전체』에서 전한다.
새롭고 유용한 생각, 즉 이전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창의적 아이디어는 다만 궁극적 질문하기로는 부족하다. 질문을 하려면 질문할 것이 있어야 한다. 신경망을 흔들어 새로운 신경망이 형성되려면, 흔들어야 할 신경망이 이미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알고 있는 신경망의 활성패턴인 지식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유력하게 인정받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새롭게 형성되는 신경망이 유용성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창의적 생각을 하려면 다양하고 풍부한 배경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을 위해 연구자는 통섭 공부를 해야 한다. 이러한 공부는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한 자원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원을 확보한 상태에서 비판적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신경망 활성패턴을 얻어내려면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가정조차 의심해야 한다. 이러한 비판적 질문하기라는 소양을 위해 연구자는 철학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앞선 선구자의 연구에서 어떤 의문과 대답이 있었으며, 그런 생각들에 어떤 문제점이 드러났었는지를 알지 못하면, 과거의 질문과 대답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적 사고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원동력이 된다. “패러다임 전환”을 설명했던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이기도 한 토머스 쿤은 이렇게 말한다. “창의적 과학 탐구를 위해, 과학자는 과학을 철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혁명의 구조』 180쪽)
창의적 과학 활동을 지도하려는 교육자 역시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위에서 지적한 두 가지 소양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열린 사고를 유도할 수 있기 위해서 통섭 공부를 해야 하며, 학생들의 논리적 사고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도 논리적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논리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 창의성을 발휘할 비판적 질문을 유도하고 장려하기 위해, 과학철학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 공부가 어렵다고 할 것 같아 『철학하는 과학, 과학하는 철학』을 펴냈다. 이 글의 내용은 그 책에서 가져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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